인간은 불복종의 행위에 의해 끊임없이 진보했다. 양심이나 신념에 의해 권력 앞에서 ‘아니오’라고 용감하게 말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적 발전이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지적 발전 또한 불복종—새로운 사상을 억누르는 권위들에 대한, 그리고 어떠한 변화를 몰상식한 것으로 규정하려는 기존의 오랜 견해들의 권위에 대한 불복종—하는 능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 에리히 프롬 <불복종에 관하여>
몇 년 전 코엑스 국제도서전의 범우사 코너 한구석에서 80년대 사상서의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 에리히 프롬의 <불복종에 관하여>를 발견했다. 에리히 프롬이라는 이름만으로 주저 없이 집어 들고 계산했다. 거의 절판에 가까운 책인 데다가 이벤트까지 더해져서 3천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좋은 책을 거의 거저 집어올 수 있어서 기분 좋으면서도, 이렇게 훌륭한 저자의 책이 너무 싸구려 취급되는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얼마간 있었다.
좋은 책이니 아껴 읽자는 생각으로 묵혀뒀다가 시야에서 벗어나며 몇 년간 잊고 지냈다. 그렇게 잊힐 뻔하다가 겨우 얼마 전에 책 정리를 하며 찾아내서 마침내 읽기 시작했다. 역시 에리히 프롬의 책이었다. 왜 진작에 읽지 않았을까 후회될 정도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음 깊은 곳을 강하게 파고드는 문장들에 압도된다.
1. 복종만 하는 인간이 되지 말라
“인간이 복종할 줄만 알고 불복종하지 못한다면 그는 노예이다.”
우리는 부모, 어른, 국가, 학교, 회사, 상사, 전통, 관행, 종교, 이념 등등 우리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대상에 둘러싸여 있다. 이들의 요구에 복종만 한다면 그는 노예일 뿐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니다.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자신의 ‘불복종’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며 강요가 아닌 ‘자발성’의 중요함을 말한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을 때 강요받는 일을 예전부터 참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신이 하고 싶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다면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유럽의 워런 버핏이라 불리는 투자의 거장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 당당하게 ‘하기 싫다’라고 말하고 하지 않는 것이 ‘독립’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이 ‘독립’이 불복종의 중요한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불복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립’의 의미는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하기 싫다”고 말할 수 있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 앙드레 코스톨라니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불복종은 별 고민 없이 순응하려고 하는 나약한 자기 자신에 대한 불복종이다.
2. 왜 복종하는가
왜 사람들은 이렇게 복종에 익숙해졌을까?
복종하고 있는 동안에는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
복종을 통해 내가 경배하는 힘의 일부가 되고, 그리하여 스스로 강해진다고 느낀다.
복종의 대가는 그 힘의 보호를 받거나 그 대상의 일부가 되는 것, 즉 소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복종의 대상이 갖고 있는 힘을 마치 내 것으로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힘은 진짜 자신의 것이 아니다. 착각일 뿐이다.
조직화된 인간은 불복종의 능력을 잃게 되고 심지어 자신이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된다.
이렇게 착각이 지속되면서 자신이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순응하는 삶을 살게 된다.
3. 불복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라
자신도 모르게 복종만 하며 순응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때때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나를 둘러싼 모든 권위를 의심해 보자. 그 권위가 요구하는 복종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불복종을 심각하게 고려해야만 한다. 하지만 불복종하려면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만 된다. 그 권위의 부당한 요구를 알아볼 수 있는 지혜, 당당하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불복종 이후의 대안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독립성이 필요하다.
불복종할 수 있는 능력을 달리 말하면 ‘자유로울 수 있는 힘’이다. 니체의 생각을 빌려 말하면 이렇다.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자유로울 수 있는 힘을 가지라는 말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늘 의존하게 돼요.
-이진우 <니체의 인생강의>
그저 복종, 순응 때로는 굴종으로 점철된 삶을 살지 않으려면, 때로 어떤 귄위에든 불복종할 수 있어야만 한다. 외부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자기 방식으로 느끼며, 용기 있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만 진정 살아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참된 자유와 독립은 개인이 오직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 느끼며,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