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예술과 비즈니스의 경계를 허물다

일과 삶을 예술로 승화한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까칠한 잡스 씨

잡스가 입양아였다는 사실이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더 예민한 감각으로 받아들였음이 분명하다. 기괴할 정도로 돌발적이고 주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 만큼 독설적인 성향이 형성된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스스로 자신의 까칠함을 이렇게 변호한다. 과연 잡스다운 답이다.  

나는 내가 사람들을 함부로 다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가 형편없으면 그저 면전에 대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뿐이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의 일이다. 나는 내 말의 논지를 놓치는 법이 없으며 대개는 내가 옳은 것으로 드러난다. 그것이 내가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 문화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혹할 정도로 솔직하며 내가 엉터리라고 생각하면 누구든 내게 그러한 생각을 말할 수 있고 나 역시 그럴 수 있다. 우리는 이따금 서로에게 소리를 질러가며 떠들썩하게 논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내게는 그것이 최고의 순간들 가운데 몇몇이었다.

미니멀리즘과 직관력

애플 제품은 하나같이 단순하다. 단순해서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모두 잡스의 미니멀리즘과 직관력 때문이다.

젊은 시절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몰두했던 선불교로부터 미니멀리즘적 미학을 받아들인 것이다.

20대 중반에는 인도에서 6개월을 생활하는데 이 시절의 경험이 직관력을 중시하는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도에 갔을 때보다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훨씬 더 커다란 문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지력을 사용하지 않지요. 그 대신 그들은 직관력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직관력은 세계 어느 곳의 사람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습니다. 제가 보기에 직관에는 대단히 강력한 힘이 있으며 지력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이 깨달음은 제가 일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이런 직관력을 키우는 데에 명상 훈련이 큰 도움이 되었다. 명상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한 대목이다.

가만히 앉아서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마음이 불안하고 산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잠재우려 애쓰면 더욱더 산란해질 뿐이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마음속 불안의 파도는 점차 잦아들고, 그러면 보다 미묘한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는 여백이 생겨납니다. 바로 이때 우리의 직관이 깨어나기 시작하고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바라보며 현재에 보다 충실하게 됩니다.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고 현재의 순간이 한없이 확장되는 게 느껴집니다. 또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는 밝은 눈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수양이며, 지속적으로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실왜곡장

잡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주제가 바로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을 왜곡하여 마치 가능한 일로 둔갑시켜(혹은 설득하여) 결국 해내게 만드는 잡스의 불가사의한 능력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한마디로 자기 충족적인 왜곡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불가능한 일을 해내도록 만들었으니까요.

초인수업 서평에서 니체의 초인 개념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잡스를 떠올렸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책에도 바로 그런 내용이 나온다.

그를 보니까 니체가 떠오르더군요.” 잡스는 니체를 공부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니체의 ‘힘 의지’ 개념과 ‘특별한 본성을 지닌 초인’ 개념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한 자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완벽을 향한 열정

애플 제품을 쓸 때마다 실감하는 ‘참 좋은 물건이다’라는 느낌은 다 이유가 있다.

완벽을 향한 미친듯한 열정이 제품에 그대로 녹아든 결과다. 완벽을 향한 예술적 열정이 그를 타협 불가능한 사람으로 만든 게 아닐지.

우리는 실제로 뉴욕의 현대 미술관에 전시될 만한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운영 방식, 제품 디자인, 홍보, 이 모든 것이 한 가지로 귀결됩니다. 단순하게 가자. 정말로 단순하게.” 애플의 슬로건은 첫 브로슈어에 실린 그대로 계속 유지되었다.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그가 만족할 때까지 아마 스무 개가 넘는 제목 표시 줄 디자인을 만들었을 거예요.” 어느 시점에서 케어와 앳킨슨은 더 중요한 일이 있는데 잡스 때문에 제목 표시 줄에 사소한 수정을 가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고 불평했다. 그러자 잡스가 폭발했다. “그걸 매일 쳐다봐야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못했소?” 그가 소리 질렀다. “사소한 게 아니야, 제대로 해야 하는 거라고.”

예술가로서 창의적인 방식으로 삶을 살고 싶다면 너무 자주 뒤돌아보면 안 됩니다. 그동안 무엇을 해 왔든, 어떤 사람이었든 다 버릴 각오가 돼 있어야 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예술가였으므로 예술가 기질에 탐닉했다.

애플 제품에 녹아 있는 단순함의 철학은 실제로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복잡한 과정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단순함은 그저 깔끔하게 보이는 것 이상이다. 순수한 본질만 남기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 수반되야만 한다.

우리는 왜 단순한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할까요? 물리적인 제품을 다룰 때 그것을 제압할 수 있다고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것에 질서를 부여하면, 제품이 사용자에게 순종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단순함은 단지 하나의 시각적인 스타일이 아닙니다. 미니멀리즘의 결과이거나 잡다한 것의 삭제도 아니에요. 진정으로 단순하기 위해서는 매우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무언가에 나사를 한 개도 쓰지 않으려고 하다 보면 대단히 난해하고 복잡한 제품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더 좋은 방법은 보다 깊이 들어가 제품에 대한 모든 것과 그것의 제조 방식을 이해하는 겁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해당 제품의 본질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죽음을 기억하라

그는 죽음을 의식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죽음 앞에서는 본질적인 것만 남기 때문이다.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중대한 선택들을 도운 그 모든 도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기대와 자부심, 망신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퇴색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더군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아까운 게 많다고 생각하는 덫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몸입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에피소드

스티브 잡스가 마케팅에 유별난 집착을 보였던 만큼 주요 광고 캠페인에 대한 언급도 많다. 그냥 글로만 봐서는 잘 떠오르지 않는 지면 광고, 영상 광고들을 직접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히 그 유명한 “Think Different!” 광고는 유명인사들의 사진과 카피 한 줄, 애플 로고만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 영상을 유튜브로 직접 찾아보니 재미와 감동도 더해진다. 특히 2007년 당시의 첫 아이폰 발표는 다시 봐도 레전드로 기억될 멋진 프레젠테이션이다.

1997 맥월드에서는 당시 사업적으로 앙숙에 가까운 빌 게이츠를 위성 연결해서 생방송 인터뷰까지 한다. 과연 잡스다운 과감한 이벤트였다. 하지만 이후 잡스는 그 인터뷰가 자신의 실수였다고 한다. 빌 게이츠가 대형 화면에 거인처럼 비치고 단상 앞의 자신은 너무 작게 보인 것이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위세에 위축된 애플을 표현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아이패드가 아이폰보다 먼저 기획되었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된 재미있는 뒷이야기다. 이미 스크린 터치 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인수하고, 당시의 PDA를 대체할 수단으로 아이패드가 기획중이었다. 그런데 회의중에 휴대폰에 터치 인터페이스를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오고 거기에 살이 붙으면서 아예 아이패드 프로젝트가 뒷전으로 밀렸다는 얘기다.  

에필로그

현재 전세계 시가 총액 1위 기업 애플. 그 회사를 만든 장본인 스티브 잡스. 그는 후세에 세상을 바꾼 혁신가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비교적 짧은 생을 살고 가서 아쉽긴 하지만 삶의 의미는 그 길이가 아닌 그가 남긴 발자국으로 평가되는 것이기에 지나치게 아쉬워할 필요는 없겠다. 예술적인 애플 제품처럼 삶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할만할 정도이니. 그와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애플 매니아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 아닌가, 할 수도 있겠으나. 산업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걸 생각하면) 우리에겐 축복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두 가지 유산을 남기고 싶어 했다. 혁신과 변혁을 선도하는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 그리고 영구히 지속될 수 있는 회사를 구축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였다

그는 디자인에 대한 집착과 완벽주의, 그리고 상상력을 애플의 DNA에 주입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러한 DNA 덕분에 애플은 수십 년 후에도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가장 번영하는 기업으로 남을 것이다.

애플에 축복처럼 각인된 스티브 잡스의 DNA가 부디 오래도록 살아남기를!

어떤 이들은 그들을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천재로 봅니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 자들……. 바로 그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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