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가진 사람들, 특히 이슬람이나 기독교 같은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왜 신을 믿는지 물어 보면 개인적인 체험을 많이 얘기합니다.
신을 보았다, 만났다, 목소리를 들었다, 신을 믿은 후 내 삶이 변화되었다, 내면에 평화가 흘러 넘쳤다. 이런 말들이죠. 이런 종교인들의 고백이나 간증을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다가도 그들의 진실된 표정, 생기넘치는 눈빛, 단호한 목소리를 들으면 저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건 아닐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을 만났다는 경험이 진짜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어빈은 자신의 책 ‘세상을 바꾸는 통찰의 순간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인간은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생각하곤 한다. 하루 종일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 생각들의 출처는 우리의 무의식이다. … 우리가 신의 인도를 받고자 기도한 다음에 떠오르는 생각도 우리의 무의식의 산물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만일 그렇다면, 그 생각은 신의 의지를 드러낸다기보다 우리의 바람을 반영할 것이다. 설령 우리가 그 생각은 초자연적인 원인에 의해서 우리 안에 심어졌다고 확신하더라도, 그 원인이 이를테면 악마가 아니라 신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윌리엄 어빈 ‘세상을 바꾸는 통찰의 순간들’
인간 행동의 95%를 결정하는 것은 무의식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무의식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갖고 있죠. 차곡차곡 쌓여온 무의식의 힘이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이유로 폭발하며 이성을 압도할 때, 종교적 체험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심리학자 마이클 셔머는 자신의 책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극도의 수면 박탈 상태에서는 현실과 환상을 가르는 벽이 무너진다. 그러면 일상 생활에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것만큼이나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심각한 환각을 겪게 되며, 환각 상태에서 듣거나 말한 것들을 정상적인 기억인 것처럼 떠올리는 것이다. 환각 상태에서 보는 사람들 역시 현실 속의 사람들만큼이나 구체적인 모습이다.
마이클 셔머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우리 뇌는 환각이나 환상에 대단히 취약합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환각에 빠집니다. 심하게 피로하거나 수면이 부족할 때, 심각한 병에 걸렸거나 신체에 약물이 주입될 때도 환각이 일어납니다. 극단적인 상황이 아닐 때도 종종 환상을 경험합니다. 매일 잠이 들거나 깰 때, 잠든 것도 아니고 깬 것도 아닌 중간 상태에서 마치 현실처럼 느껴지는 환각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태를 ‘하프나고기아’라고 합니다.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이 신을 만나고픈 강력한 열망을 품고 있을 때, 이 하프나고기아 상태에서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를 만나게 되면 자신이 믿는 신이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겠죠.
윌리엄 어빈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연구자들은 간질 환자가 경험하는 종교적 계시가 부분적으로 그의 종교관에 의존함을 발견했다. 서양의 간질 환자는 발작 중에 예수, 기독교의 신, 천사를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가 듣는 목소리는 기독교에 귀의할 것을 지시할 수 있다. 반면에 간질 발작을 겪는 일본인은 부처에게 기도하라고 지시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여러 학자들이 종교적 계시를 경험한 인물들 중 상당수가 간질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 기독교의 중심인물인 바울도 간질을 알았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물론 신을 만난 경험이 무의식의 작용이나 환각이 아닌 정말 일어난 체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이슬람을 믿는 저 사람은 자기 경험을 얘기하며 알라신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말하고, 기독교를 믿는 이 친구 역시 자기 경험을 말하며 하나님이 유일한 신이라고 말합니다.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 역시 비슷한 경험을 말하고 자기 종교가 유일한 진리라고 말합니다. 과연 누가 맞는 걸까요?
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는 그의 책 진실사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서》의 말씀을 믿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많은 이들이 꼽는 공통적인 이유는 《성서》의 신에 대한 믿음을 확증해주는 신과의 직접적 만남을 강렬하게 체험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체험을 한 적이 없는 이들이 보기에 그토록 중요한 믿음의 기반으로 그 정도의 체험은 허약해 보인다. 역사를 돌이켜봐도 사람들은 저마다 신과 교감을 나눴다는 주장을 해왔지만, 상충되는 주장이라 그다지 신뢰할 만해 보이지 않는다.
줄리언 바지니 ‘진실사회’
윌리엄 어빈은 이런 비유를 합니다. 사막에서 길 잃은 100명이 있는데, 이중 10명만 시력이 있고 나머지 90명은 맹인입니다. 그런데 시력이 온전한 10명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에 대해서 제각각 의견이 다른 상황이죠. 그럼 맹인들은 과연 누구의 의견을 따라야 할까요? 여러 종교들의 주장이 바로 이 비유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누가 진짜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죠.
물론 이들 종교 중에는 진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틀릴 수도 있는 것이죠.
종교적 경험은 무조건 거짓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런 종교적 경험, 신비한 체험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죠. 이런 한계를 분명히 인식할 때 종교체험을 더 지혜롭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전 영상에서도 다뤘지만 사람은 쉽게 확증편향에 빠집니다. 자신이 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이 강하죠. 종교적 경험은 여러 확증편향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기 때문에 더더욱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종교적 주장, 계시나 개인적인 신앙 경험, 혹은 스스로 그런 신비한 경험을 했을 때 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기를. 우리의 한계를 알고, 더 나은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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