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만들어진 위험 – 전투적 무신론 입문 가이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의 책이 새로 나왔습니다. 영어판으로 2019년에 나온 ‘Outgrowing God’ 이라는 책의 한국어 번역판이죠. 제목을 의역하면 ‘신으로부터 벗어나기’ 부제는 초보자를 위한 가이드입니다. 무신론 초보자,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인 만큼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도킨스가 지금까지 쓴 유명한 책들을 쉽게 요약한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죠. ‘만들어진 신’, ‘눈먼 시계공’ 같은 책들의 내용이 골고루 들어가 있습니다.

입문 가이드라고 해서 마냥 가벼운 내용은 절대 아닙니다. 유신론, 특히 기독교, 이슬람, 천주교의 유일신을 왜 믿을 수 없는지에 대한 명쾌한 논리와 과학적인 설명이 설득력있게 이어집니다.

도킨스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이성적인 사람에게 ‘종교는 믿을 만한게 못된다’라는 것이죠. 말그대로 전투적입니다.

종교는 우연이다

책의 시작부터 아주 전투적입니다. 도킨스에 따르면 사람들이 어떤 종교를 믿는 이유는 순전히 그 사람이 태어난 환경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에, 어떤 종교를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가 종교를 결정하는 것이죠. 그 종교가 진실인지, 얼마나 믿을만한지 여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태어난 사람은 당연히 기독교인이 됩니다. 중동 지역의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당연히 무슬림이 되겠죠. 고대 이집트에서 태어난 사람은 파라오를 통치자이자 신으로 섬겼겠죠. 고대 북유럽 사람들은 토르를 천둥신으로 섬겼습니다.

이건 언어와도 마찬가지죠. 어느 시대에 어떤 언어를 쓰는 부모 밑에 태어났는지가 그 사람의 언어를 결정합니다. 중세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사람은 라틴어를 모국어로 썼습니다. 현대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한국어를 쓰겠죠. 그 언어가 유일하게 진실된 언어거나 가장 유용하고 좋은 언어라서 쓰는게 아니죠. 단순히 그 시대에 그 언어를 쓰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겁니다.

종교도 그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죠. 그런데 “내가 믿는 종교가 네가 믿는 종교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도킨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 부모를 따라 그들 나라의 신 또는 신들을 믿는다. 이런 신앙은 서로 모순되고, 따라서 모두 옳을 수는 없다. … 만일 그 신앙 중 하나가 옳다면 어째서 여러분이 태어난 나라에서 우연히 물려받은 신앙이 옳아야 하는가? … “거의 모든 아이가 부모와 같은 종교를 따르고, 그것이 항상 옳은 종교가 된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성경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도킨스는 성경이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역사가 아니라 신화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제우스나 아폴로를 신으로 섬겼지만, 지금은 그저 신화속 이야기일 뿐이죠.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 단군신화, 알에서 태어났다는 박혁거세를 실제로 믿지 않듯이 성경도 믿어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성경이 기록된 과정을 살펴봐도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기는 힘듭니다. 마치 예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임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왜곡과 과장이 생길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특히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록한 복음서들이 쓰인 연대는 실제 사건이 일어난 후에 적어도 40년 이상 시간이 흐른 후에 쓰였습니다. 왜곡이 생기기 충분한 시간이죠.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은 수백명이 실제로 목격했고 영상으로도 찍혔습니다. 당시 곧바로 조사가 진행되고 세세한 부분까지 기록한 보고서가 발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몇 년에 걸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수많은 소문과 음모론이 생겼죠. 911 테러도 마찬가지죠. 당시 촬영된 수많은 영상과 기록이 있지만 여전히 루머와 음모론을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팝스타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아있다는 목격담도 아직까지 계속 됩니다. 불과 몇 십년 전의 역사적 사실도 이렇게 왜곡되고 과장되는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성경을 사실로 믿을 수 있을까요?

성경은 도덕적이지 않다

성경에는 유익한 도덕적 가르침이 있기 때문에 따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도덕은 성경이 씌여진 그 시대의 기준에 머물러 있죠. 기독교의 신은 성경 여러 곳에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이방 민족들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심지어 갓 난 아기까지 남자라면 모두 죽이고 여자는 노예로 거느리라라고 합니다. 여자 노예는 당연히 성노예를 말합니다. 지금 같으면 명백한 전쟁 범죄로 다뤄질 일이죠. 모세가 하나님으로 부터 직접 받았다는 십계명중 열 번째는 ‘이웃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입니다. 그런데 그 재물중에는 그 사람의 아내와 노예가 포함됩니다. 여성과 신분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죠. 물론 당시 노예와 여성의 지위를 고려하면 크게 잘못된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성경이 불변의 진리가 될 수 없다는 반증이죠. 신은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아들을 죽이기 직전에 멈추라는 명령을 하지만, 여러분이 그 아들의 입장이라면 신이 선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2차 대전 당시 600만이 넘는 유태인이 희생되었습니다. 도킨스는 여기에 기독교의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예수의 죽음을 유태인 탓으로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의 인식이 한몫 한 것이죠. 당시 히틀러도 이런 종교적 신념에 영향을 받았다는 겁니다.

이렇게 시대에 뒤떨어지는 도덕 기준을 가치있게 생각할 이유가 있을까요?

세상을 설명할 때 신은 필요 없다

이렇게 아름답고 복잡한 구조를 가진 생명체가 그냥 우연히 생겨났을 리 없다. 분명히 이 모든 것을 창조한 어떤 존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신은 반드시 존재한다. 유신론자들은 이렇게 말하며 신의 존재가 필연적이라고 말합니다.

도킨스는 이렇게 반론합니다. 믿을 수 없이 낮은 확률의 일이 일어났지만, 그런 일을 해낸 신이 존재할 확률은 그 보다 더 낮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확률이 낮은 어떤 일에 신을 개입 시키면 확률이 더 낮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신의 존재는 이성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죠. 이렇게 복잡한 우주와 생명을 창조한 신이라는 존재는 그 피조물보다 훨씬 복잡한 존재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복잡한 존재를 설명하려면 이 우주와 생명보다 더 복잡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은 처음부터 스스로 있는 존재다’ 라고 말합니다. 설명이 필요 없이 그저 처음부터 존재했다는 얘기죠. 그럼 이 우주도 처음부터 존재했다고 할 수 없을까요?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계는 그 시초가 있었으리라고 생각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사물은 시초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사실은 우리의 상상력의 빈곤 때문입니다.

이 우주도 그저 처음부터 존재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종교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간은 패턴을 찾는 본능이 있습니다. 패턴을 잘 찾는 개체가 후손을 남길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 아주 오랫동안 인류는 기후의 변화, 날씨 변화 같은 자연의 패턴을 관찰하면서 그 패턴을 만드는 행위자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해하기 편하고 쉽기 때문이죠. 이런 인간의 본능때문에 이 행위자가 신이 되고 이 신을 숭배하는 종교가 생긴 겁니다. 세계 곳곳에서 자연적으로 종교가 발생한 과정도 이런 이유 때문이죠.

2차 대전 당시 남태평양의 여러 섬에서 ‘화물 신앙’이 유행했습니다. 당시 미군들이 비행기나 전함에 싣고 온 화물에 섬 주민들이 보기에 진귀한 물건들이 많았죠. 그 화물의 물건이나 식료품들이 섬 주민들에게 흘러들어가면서 풍족함과 편리함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철수하면서 이런 행복은 끝났습니다. 그래서 이 섬의 주민들은 미군이 만든 활주로나 비행기를 재현해서 만들고 옷도 미군처럼 차려입고 군대 행사를 모방한 종교의식을 치릅니다. 당시 미군들이 하던 대로 따라 하면 그 화물들이 하늘에서 내려 올 것으로 믿은 것이죠. 이런 화물 숭배 신앙이 당시 태평양의 여러 섬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발생했다고 합니다. 문명화된 사회에 사는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참 웃기는 일이지만, 잘 못 해석한 패턴이 종교화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사건이죠. 제가 보기엔 많은 종교가 이 화물 숭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류가 다양한 종교를 가지게 된 과정은 이렇게 세상의 패턴을 이해하고자 하는 나름의 노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을 설명하고 패턴을 이해하는 데 신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과학이 있기 때문이죠. 세상은 빅뱅으로 부터 시작되었고, 현재의 모든 생물은 진화의 결과죠. 지진은 신이 분노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지각의 충돌 때문입니다. 코로나에 걸린 건 벌을 받아서가 아니라,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이죠. 우주는 천체물리학이라는 과학의 렌즈를 통해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고, 인간의 마음은 진화심리학이라는 현미경을 통해 그 어느 때 보다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패턴은 이제 과학과 합리적인 이성만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세상에는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종종 일어나죠. 하지만 이런 일들은 ‘아직’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것 뿐이고, ‘결국’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과학사는 미신과 종교에 대항해서 싸우고 결국 과학이 옳다고 증명된 일들의 기록이죠.

세상을 신이 움직인다고 생각하기 보다, 신이 없다고 생각 하는 경우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질 수 있습니다. 세계는 신이나 초자연적 존재가 없을 경우 예상되는 그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죠. 신이 우리를 창조한 것보다 우리가 신을 창조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습니다.

물론 종교가 인류에게 미친 좋은 영향도 있을 겁니다. 도덕심을 고양하고, 공동체의 단합을 꾀하고, 불안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었죠. 하지만 이제 종교의 유통기한은 끝난 것 같습니다. 종교의 순진한 신화와 낡은 교리를 믿기엔 이제 인류가 너무 성숙했죠. 인류에겐 과학과 이성이라는 훌륭한 도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종교의 시대를 끝내고 과학의 시대로 나가야 할 때입니다. 어린 아이가 성인이 되면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듯이 이제 우리 인류도 종교와 신의 그늘에서 벗어나 과학을 벗삼아 성장(Outgrow)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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