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역시 변함없이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전작 사피엔스에 비하면 훨씬 급진적이다. 사피엔스가 과거의 해석을 주로 했다면, 호모 데우스는 미래의 예측이라서 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1. 유발 하라리, 초인간을 말하다
“유전자 검사 결과, 앞으로 태어날 당신의 딸이 똑똑하고 예쁘고 착하지만 만성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해보라. 시험관 단계에서 빠르고 고통 없이 개입할 수 있다면 평생 겪을 비극에서 딸을 구하고 싶지 않겠는가?”
위 질문의 답은 명확하다. 그 누가 딸을 구하고 싶지 않을까? 물론 일부 개인적 신념에 따라 거부할 부모도 있을 수 있지만 극소수에 그칠 것이 분명하다.
생명공학, 사이보그공학, 비유기체 합성 등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업그레이드 할 기술이 빛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 기술들이 단순한 업그레이드를 넘어 마침내 인간을 불사신의 경지로 끌어 올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부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부활이 현실화 될 수도 있다. 미래의 과학을 통해 진짜 거듭나는 사람이 생길지 누가 아는가. 현생 인류와는 전혀 다른 초인간의 탄생이 목전에 있다.
2. 유발 하라리, 종교에 사망선고를 내리다
전작 사피엔스에 이어 종교에 대해 다시 한번 사망선고를 내린다. 종교를 뒤잇는 인본주의에 대해서도 퇴출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하며, 인본주의를 종교와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이해한다는 점이 신선하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믿음을 강화하면서 자기영속적인 고리를 만든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믿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을 때까지 상호 확증을 거듭하며 의미의 그물망을 팽팽하게 만든다.”
그것(종교 혹은 이념 또는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진실이라서 믿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나 인본주의나 마찬가지다.
“몇십 년, 몇백 년이 지나면 의미의 그물망이 풀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그물망이 만들어진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의 그물망들이 생기고 풀리는 것을 지켜보고, 한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 후손에 이르러 완전히 무의미해 진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아무리 확고해 보이는 종교나 이념이라도 번번히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인간의 신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역사속에서 처절하게 증명되고 있다.
3. 자아는 없다. 알고리즘이 있을 뿐
자아의 실체가 없다는 주장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떠올리게 한다. 나 자신의 행동이라고 본 모든 것이 부질없는 본능적 알고리즘일 뿐이란 말인가. 너무 앞서 나간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과감하고 용기있는 발언에 박수를 보낸다.
아직 40대 초반의 젊은 학자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강하게 확신에 찬 발언을 할 수 있는게 아닌가 싶다.
“21세기의 기술로는 ‘인류를 해킹해’ 나보다 나를 훨씬 더 잘 아는 외부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개인주의에 대한 믿음은 붕괴할 것이고, 권한은 개인들에서 그물망처럼 얽힌 알고리즘들로 옮겨갈 것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기 소망에 따라 인생을 운영하는 자율적인 존재로 보는 대신, 네트워크로 얽힌 전자 알고리즘들의 관리와 인도를 받는 생화학적 기제들의 집합으로 보는 데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
지금도 네비게이션의 지시에 따라 운전하고, 검색 결과에 따라 맛집에 가고, 내 취향을 반영해서 추천된 영화를 보고, 내 생체리듬에 따라 운동하는 등등 이미 우리는 알고리즘의 추천에 따라 움직이는데 익숙하다. 이런 흐름에 점점 속도가 붙으면 결국 알고리즘에 따라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최근에 자기 계발서나 소설들이 끊임없이 얘기하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조언은 이제 ‘알고리즘을 따르라’는 말로 대체될 것이다. 좀 서글프긴 하지만 저 혼자 내면의 목소리에 따르겠다며 고집을 피우면, 미개한 사람 취급 받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
“개인은 종교적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실재하는 세계는 생화학적 알고리즘들과 전자 알고리즘들이 뚜렷한 경계도 없고 각각의 허브도 없이 그물망처럼 얽힌 상태임이 드러날 것이다”
켄 윌버의 ‘무경계’,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에서 이야기하는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자아라는 것은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 환상일 뿐,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그 연결된 망의 일부로 존재한다.
4. 유발 하라리, 새로운 종교(데이터 교)를 말하다
과거의 종교, 현대의 종교(인본주의)를 잇는 새로운 종교가 출현하고 있다. 이름하여 ‘데이터교’!
“인간은 그저 만물인터넷을 창조하는 도구이며, 만물인터넷은 결국 지구에서부터 은하 전체를 아우르고 나아가 우주 전체로까지 확장될 것이다. 이런 우주적 규모의 데이터 처리 시스템은 마치 신과 같을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모든 것을 통제할 것이고, 인간은 그 안으로 흡수될 것이다.”
인간이 시스템으로 흡수된다니, 공각기동대의 한 장면에서 네트워크의 바다로 뛰어드는 주인공 쿠사나기를 연상시킨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이미 80년대에 이런 미래를 예견한걸까?
“전통적인 종교는 당신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우주적 규모의 장대한 계획의 일부이고, 신은 매순간 당신을 지켜보며 당신의 생각과 감정에 신경 쓴다고 말했다. 이제 데이터교는 당신의 모든 말과 행동은 거대한 데이터 흐름의 일부이고, 알고리즘은 항상 당신을 지켜보며 당신이 행동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신경 쓴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매우 흡족해한다.”
이렇게 본다면 데이터교야 말로 역사상 최고의 종교라 할 만 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저 공허한 말뿐인 경전속의 약속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 실현되는 진짜 천국을 보장하는 종교이니 말이다.
5. 인류는 잔물결일 뿐
“인간이 네트워크에서 수행하는 기능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될 때, 우리는 우리가 창조의 정점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신성시한 바로 그 잣대가 우리를 매머드와 양쯔강돌고래처럼 잊힌 존재로 만들 것이다. 먼 훗날 되돌아본다면, 인류는 그저 우주적 규모의 데이터 흐름 속 잔물결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위 구절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잔물결이라 함은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에 한정해야 할 것이다. 미래의 인류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겠지만 (아마 호모 데우스?) 사피엔스와 구분되는 (구분되지만 단절되지 않는, 연속성은 있는) 진화한 존재로 생각하면 되겠다.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의식(혹은 정신), 그리고 유기체도 무기체도 아닌 불멸의 육체가 통합된 어떤 존재일 것이다. 이런 미래상을 지나치게 암울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인류가 기계로 대체된다기 보단 알고리즘과 통합되며, 기술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 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더 맞지 않을까.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 사이에 명확한 단절이 존재할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식이든 평화로운 전환, 모두에게 이로운 진화이길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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