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왜 행복해지지 않을까?

우리는 왜 살까요?
삶의 목적을 묻는 질문에
우리는 보통 행복을 위해 산다고 답합니다.

하지만 최근 이어지고 있는 행복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보면
행복을 좇는 삶이 행복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실제로는 오히려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사회과학 연구에서 행복도를 측정할 때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개인이 얼마나 긍정적인 감정을 자주 느끼는지,
반대로 부정적인 감정을 얼마나 자주 느끼는지를
조사하는 겁니다.
부정적 감정에 비해 긍정적 감정의 비율이 높을수록
더 행복하다고 보는 것이죠.
결국 행복은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정에 가깝습니다.
일시적인 것이죠.
그리고 이전 영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행복감은 잠시 느껴졌다가도 금방 제자리로 돌아가 버립니다.
인간의 정신 자체가 그렇게 행복감이 재조정되도록
진화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행복은 마치 신기루같이 따라잡았다 싶으면
어느새 사라지고 말죠.
그렇게 갈망하던 행복이 잡았다 싶은 순간 사라져 버리니
오히려 불행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견고하게 유지되어 왔던 인류의 지상 과제,
행복이 인간이 살아가야 할 이유라는 명제가
요즘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요?

650만 명이 시청한 TED 영상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가 에밀리 스미스는 자신의 책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를 통해
이 문제에 답합니다.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면
행복감이 바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가족중 누군가가 아파서
간호를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튜브나 게임보다 가족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당장 그 순간은 행복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그 결정을 후회하게
될 것이 뻔합니다.
가족을 돌보는 것이 더 의미있기 때문에
할 가치가 있는 것이죠.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대체로 행복감을 낮추는 일입니다.
결혼 후 부부의 행복도를 조사한 연구 결과를 보면
결혼 직후 최고의 행복도를 보이다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안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자녀가 독립하면 다시 행복도가 올라가는 패턴을 보입니다.
이렇게 육아는 부부의 행복도를 낮추는 것이 명백한데
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일까요?
바로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당장의 행복감은 낮을 수 있지만 자녀를 정성껏 키우는 일이
장래에 더 심오한 형태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삶의 목적이라고 말한
최초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를 우리가
따라야 할 최고선이자 삶의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이 ‘에우다이모니아’를 흔히들 행복이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너무 단순한 번역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우다이모니아는
잠깐 지나가는 긍정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내면의 자질을 기르고 잠재력을 살리는 능동적인 삶,
보다 장기적인 측면의 인격 수양에 가까운 말입니다.

플로리다 대학교의 심리연구팀은 의미있는 삶과
행복한 삶의 차이점을 연구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행복한 삶은
편안한 삶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대체로 기분이 좋고 스트레스와 걱정도 없고
신체적으로도 건강하고 문제 없는 삶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행복만 추구하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이기적이라는 겁니다.
주기보다는 받기만 하는 사람이죠.
그리고 이들이 느끼는 행복은 주로
피상적인 행복감입니다.

반대로 의미있는 삶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주로 주는 편이고
공동체에 기여하며 타인을 돌보고 좋은 가치를 위해
투쟁하기도 한다는 겁니다.
일시적인 쾌락과 만족보다는 장기적인 의미를 위해
기꺼이 현재의 스트레스와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수천년간 행복만이 인류의 목적이라는
진실로 여겨지던 명제가 깨지고 있습니다.
더 좋은 삶이 새롭게 정의되고 있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우리는 행복만을 위해 살기 보다 의미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행복이 아닌 의미를 좇아야 한다고 해서
행복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의미를 중시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역시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다만 일시적인 쾌락에 가까운 행복이 아니라,
더 궁극적이고 높은 차원의 행복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죠.

행복이 아닌 의미를 좇으면 결국
행복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