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스토리에 속지 마라(이야기 편향 위험)

이야기 편향 위험

차 한 대가 다리위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다리가 무너졌습니다. 다음 날 사람들은 어떤 뉴스를 듣게 될까요? 그 차에 타고 있던 불행한 가족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겁니다. 어디서 타서 어디로 가는 중이었는지, 부모는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아이들은 얼마나 딱한 사연이 있는지 같은 ‘이야기’들을 듣게 되겠죠. 그런데 이 ‘이야기’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무너진 다리죠. 다리의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설계 결함은 아닌지, 부실 건설은 아닌지, 정기 점검을 제대로 했는지 같은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미건조한 사실들 보다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끌립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A) 한 남자가 죽었다. 그리고 한 여자가 죽었다.

B) 한 남자가 죽었다. 그러자 여자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괴로워 하다가 죽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두 번째 이야기를 더 잘 기억합니다. A는 단순히 일어난 일을 사실로 묘사했고, B는 ‘의미’ 가 들어있기 때문이죠. 분량만 생각하면 A 이야기가 더 짧아서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우리 뇌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죠. 조금 길어도 의미있는 인과관계가 있는 이야기를 선호합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식의 광고가 제품의 장점을 나열하는 광고보다 효과적입니다.

뉴스도 마찬가집니다. 객관적인 사실을 나열하는 뉴스보다 마치 드라마처럼 스토리가 있는 뉴스가 더 인기있죠. 대다수 언론이 자극적인 이야기를 만드는데 혈안인 이유가 다 있습니다. 드라마 같은 이야기, 자극적인 스토리가 돈이 되기 때문이죠.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뉴스를 봐도 그렇습니다.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뉴스에서는 당시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해 전 FRB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이 파생상품을 너무 느슨하게 방치한 실책때문이다. 라는 그럴 듯한 이야기로 단순화 해버립니다.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죠.

사실 금융위기는 여러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아주 복잡한 사건이었습니다. 심지어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짜 원인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정도죠. 그래도 이렇게 단순화한 뉴스는 이해하가 쉽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단순한 이야기는 인기가 있어서 돈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겁니다. 사실이 아니라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왜곡된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자극적이고 왜곡된 이야기들로 도배된 뉴스는 더이상 보지 않습니다.

투자에서도 마찬가집니다. 화려한 이야기에 현혹되서 투자하는 경우가 많죠. 미국의 테라노스라는 회사 기억하시나요? 피 한 방울로 250여 종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혁신적인 진단 키트를 출시해서 2015년 당시 기업가치가 10조에 이를 정도로 유망한 유니콘 기업이었죠. 하지만 월스트리트 저널이 정밀 취재한 결과 테라노스의 화려한 스토리는 모두 사기로 밝혀졌습니다. 실제로 테라노스의 키트가 진단할 수 있는 질병은 10여 가지 정도 뿐이었죠. 하루 아침에 테라노스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고 CEO 엘리자베스 홈즈 역시 사기꾼으로 전락했죠. 모두 화려한 이야기에만 현혹된 결과였습니다. 테라노스는 믿을만한 논문이나 최소한의 실험 데이터도 발표한 적이 없었죠. 화려한 스토리보다 재미없지만 객관적인 팩트가 더 중요한데 말이죠.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닷컴버블 시기에 이런 스토리텔링에만 기댄 묻지마 투자 광풍이 불었었죠. 대표적으로 새롬기술 같은 회사가 있습니다. 1,900원 정도 하던 주가가 6개월만에 거의 150배가 상승해서 28만원이 넘어갑니다. 한 때 4대 재벌을 합친 것보다 큰 시총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이 실패하며 2001년 법정관리로 넘어가고 맙니다. 이 회사의 다이얼패드라는 국제 통화 서비스가 통신 시장을 제패할 거라는 화려한 이야기에만 투자자들이 현혹된 결과죠.
이 회사가 아무리 통신 시장의 지배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의 시가총액은 말이 안되는 수치였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편향은 투자할 때도 아주 위험한 결과를 만듭니다. 워런 버핏이 자신이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회사에만 투자하는 이유도 바로 이야기 편향을 피하기 위한 것이죠.

일상에서도 이야기 편향은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사이비 종교나 사기꾼들도 이야기 편향으로 우리를 현혹하죠. 언뜻 들어보면 그럴듯한 이야기들에 혹하게 됩니다. 그 종교 모임에 참여하면 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돌침대에서 자면 불면증이 사라지고 금방 건강해질 거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하지만 결국 그저 말뿐이고 실제로 원하던 변화는 일어나지 않죠.

이런 이야기 편향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화려한 이야기를 앞세우는 말과 글은 무조건 걸러야 합니다. 화려한 이야기 뒤에 감춰져 있는 실체가 중요하죠. 재미있는 이야기보다 조금 지루하더라도 정확한 팩트, 데이터, 숫자에 주목해야 합니다.

투자를 한다면 회사의 화려한 스토리텔링보다 실제 기술력이 있는지 여부나 매출, 이익, 성장률같은 정확한 숫자에 주목해야 합니다. 보통 바이오 벤처들이 화려한 스토리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죠.
이런 경우에도 무슨무슨 암을 정복하겠다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 보다 다국적 제약기업과 실제로 협업한 사례나 기술 수출 실적이 있는지 같은 팩트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야 합니다.

뉴스를 볼 때도 자극적이고 잡다한 이야기보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야기 이면에 어떤 팩트가 있는지, 정확한 데이터나 숫자는 무엇인지에 의식적으로 집중해야 이야기에 현혹되지 않고 옳바른 판단을 할 수 있죠. 사람을 판단할 때도 그 사람이 말하는 이야기보다 행동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이야기는 왜곡될 수 있지만 행동은 속이기 어렵기 때문이죠.

이렇게 이야기 편향은 우리 판단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왜곡되고 단순화된 이야기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하죠. 화려한 언변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 그럴듯한 스토리텔링으로 혹하는 뉴스를 접하면 이야기 편향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합니다. 이야기 자체보다는 그 뒤에 감춰진 팩트, 데이터, 숫자가 무엇인지에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습관을 들여 보세요.

참고
스마트한 생각들 by 롤프 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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