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 아는 것이 많아진다. 하지만 모르는 것은 더 많아진다”
독서량이 그리 많지 않았던 10대, 20대 시절에는
책을 읽어가며 나름의 지식과 교양이 쌓여간다는
만족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읽을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지는 느낌이 커집니다.
이건 단순한 느낌 이상이죠.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이걸 몰랐구나,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고 새롭게 깨닫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혹은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잘못 알고 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지는 경우도 종종 생기죠.
이렇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아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죠.
“사람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은 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안다는 그 하나만큼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자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죠.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
독서를 통해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게 되죠.
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도 모릅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과학혁명이 인류 전체에게 무지의 혁명이었던 것처럼,
독서는 개인적인 차원의 무지의 혁명이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다, 다 정해져 있다,라고 생각하면
사고의 폭이 그대로 한정됩니다.
하지만 아직 잘 모르고 계속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한계가 사라지죠.
생각의 폭이 넓어집니다.
중세 유럽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잘 모르는 것, 설명되지 않는 것에 대해
‘신의 뜻이다’라는 한마디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었기 때문에
지식의 발전이 더뎠습니다.
‘신이 그렇게 하셨다’ 혹은 ‘교황이 그렇게 말했다’라는 한마디에
반박의 여지가 없어집니다.
하지만 무지함을 인정하면 한계가 없어지죠.
더 알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생깁니다.
어떤 권위에도 의심의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됩니다.
내 이해가 부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겸손해 집니다.
내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면
타인에 대한 수용의 폭도 넓어집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습니다.
독서도 마찬가지죠.
독서하는 사람은 읽을수록 겸손해 집니다.
책을 읽으며 모르는 것이 많아진다면,
독서 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겁니다.
읽을수록 무식해지는 것이 진짜 독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