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록 무식해지는 독서

독서는 무지의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이다

“책을 읽으면 아는 것이 많아진다. 하지만 모르는 것은 더 많아진다”

독서량이 그리 많지 않았던 10대, 20대 시절에는 책을 읽어가며 나름의 지식과 교양이 쌓여간다는 만족감이 있었다. 하지만 30대를 지나, 40대를 넘어가면서 부터는 읽을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지는 느낌이다.

이는 단순한 느낌 이상이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이걸 몰랐구나,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 경우가 많아진다. 혹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잘못 알고 있던 것으로 판명되거나 새롭게 발견한 미지의 영역이 넓어진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아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은 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안다는 한 가지 점에서만큼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공자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

독서를 통해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의 무지함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과학혁명이 인류 전체의 무지의 혁명이었던 것처럼, 독서는 개인적인 차원의 무지의 혁명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이미 다 알고 있다, 다 정해져 있다,라고 생각하면 사고의 폭이 그대로 한정된다. 하지만 아직 잘 모르고 계속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한계가 사라진다.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 내가 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타인에 대한 수용의 폭도 넓어진다.

잘 모르는 것, 설명되지 않는 것에 대해 ‘신의 뜻이다’라는 한마디로 끝나면 더 이상의 진전은 없다. ‘신이 그렇게 하셨다’ 혹은 ‘권위자가 그렇게 말했다’라는 한마디에 반박의 여지는 없어진다. 하지만 무지함을 인정하면 한계가 없어진다. 더 알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생긴다. 어떤 권위에도 의심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내 이해가 부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타인에 대한 겸손함의 깊이도 깊어진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독서가는 읽을수록 겸손해진다.
책을 읽으며 모르는 것이 많아진다면, 독서 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읽을수록 무식해지는 것이 진짜 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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