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의 사람이 어떤 조작된 이야기를 한 달 동안 믿으면 그것은 가짜 뉴스다. 반면에 10억 명의 사람이 1000년 동안 믿으면 그것은 종교다.
–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리디북스에서 살펴보기
유발 하라리는 이전 책,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보다 더 강도 높게 종교를 깎아내린다. 종교를 완전한 허구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기독교인이 이슬람교의 마호메트를 허구로 생각하고 불교 경전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꾸며낸 이야기로 생각하듯이, 다른 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 역시 기독교를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로 본다. (단군신화와 창세기 이야기의 다른 점이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 처녀가 애를 낳고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이야기와, 곰이 사람으로 변하는 이야기에 무슨 다른 차원이 있을까?)
하지만 오랜 세월 특정 종교를 믿어온 사람들은 아무리 이론적인 종교의 허점을 알게 되더라도 종교를 쉽게 버릴 수 없다. 이미 종교가 자기 삶에 부여하는 의미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자기 종교를 버린다면 자신의 삶 마저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종교인에게 합리적, 이성적 설명이 통하지 않는 이유다.
종교가 허구라고 해서 쓸모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소설도 허구지만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처럼, 종교도 그 나름의 효용가치가 있다. 종교적 신념을 통해 사람들의 협력을 이끌고 자선을 베풀며 안식과 위안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해서 허구가 진실이 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종교뿐 아니라 인류 문명 자체가 거대한 허구 위에 서 있다고 말한다. 과거의 신화부터 현대의 자본주의까지 모두 실체 없는 꾸며낸 이야기다. 이렇게 이야기를 꾸며내는 힘, 허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인간 문명을 이끌어 왔다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화폐 역시 그 자체로서 전혀 가치가 없다. 종이 쪼가리일 뿐이지만 화폐의 가치를 인정하자는 약속, 즉 허구에 불과하다. 정치, 법, 이념, 사회운동, 브랜드 등등 이런 허구의 예는 셀 수 없이 많다.
유발 하라리는 더 대담한 영역으로까지 나아간다. 인간의 의지, 욕망 혹은 자아라는 것도 허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의지는 뇌 속의 뉴런이 생화학 신호를 교환한 결과다. 나의 자아도 내가 속한 문화적, 유전적 성향을 철저히 따라가기 마련이다. 수많은 외부의 메시지, 집단의 압력, 타인의 시선, 받아온 교육이 수시로 영향을 미치며 나의 자아를 형성해 나간다. 이렇게 보면 나의 순수한 의지 혹은 진정한 자아라는 것이 실재하는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라리는 이렇게 허구적인 신념, 욕망, 자아에 큰 의미를 두지 말라고 충고한다. 모든 것은 변하며 지속적인 본질은 없기 때문이다. 최고의 선, 지고의 가치, 진실한 사랑 같은 것들에 집착하면 할수록 예정된 실패로 인한 상실감이 커질 뿐이다. 절대적 우위의 가치, 이념, 진실은 있을 수 없다. 상대적 최선을 추구하되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것, 그로 인해 타인의 고통을 유발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탐사해 나가는 것이 현재로선 삶을 대하는 최선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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