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의 증거, 지울 수 없는 흔적

책 제목이 ‘지울 수 없는 흔적’인데 원제는 ‘진화는 왜 사실인가(Why evolution is true)’ 이다. 원제가 주제를 가장 확실히 나타내는 좋은 제목인데 왜 이렇게 바꿨을까? 아무래도 진화론을 언급하기만 하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은 대한민국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주제는 머리말의 다음 구절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진화는 사실이다. 지난 150년 동안 과학자들이 수집한 증거는 다윈주의에 의혹을 일으키기는 커녕 다윈주의를 완벽하게 지지한다. 증거들은 진화가 실제 벌어졌다는 것, 그것도 대체로 다윈이 제안했던 자연 선택 과정을 통해서 벌어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서론은 다음과 같은 글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다윈이 중요한 것은 진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진화가 중요한 것은 과학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학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이야기이기 때문이고,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말해 주는 영웅 서사시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셔머” 

‘종의 기원’ 마지막 문단도 인용하는데, 다윈의 위대한 업적은 과학적 성과만이 아니라 문학적 소양도 한몫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세계관에는 장엄함이 있다. 최초에 소수의 형태 또는 하나의 형태에 갖가지 능력을 지닌 생명의 숨결이 불어넣어졌다. 행성이 고정된 중력의 법칙에 따라 영원히 돌고 도는 동안, 이토록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무한한 형태가 진화해 나왔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론의 요지는 다음과 같은 짧은 문구로 요약할 수 있다. 

“지구의 생명은 35억 년 전에 살았던 하나의 원시적 종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이 세월에 따라 가지를 쳐서 새롭고 다양한 종을 낳았으며, 그러한 진화적 변화는 대부분 자연 선택 메커니즘에 의해 벌어졌다.” 

그리곤 곧바로 진화론의 증거들을 하나씩 소개한다. 


화석

우선 누구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화석들부터 시작한다. 화석은 땅속 가장 깊은 층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 발견되고, 지표면에 가까운 층일수록 현대의 동물과 비슷한 종들이 발견된다. 연대순으로 화석을 늘어놓으면 진화 순서와 맞아떨어진다.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진화의 강력한 증거가 된다. 

그 중 인상적 사례는 ‘틱타알릭로제‘로 이름 붙여진 동물이다.

틱타알릭로제 복원도 (출처:위키피디아)

이 동물의 화석은 어류에서 양서류로의 진화를 설명하는 놀라운 발견이다. 화석의 연대도 약 3억 7천 5백만년 전 지층에서 발견되어, 어류에서 양서류로 진화하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 외에도 고래가 부분적으로 수중생활을 하던 상태를 거쳐서 완전한 수생동물로 진화한 과정도 화석이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흔적기관, 배아, 나쁜 설계

흔적기관도 진화의 강력한 증거가 된다. 사람에게도 우리의 먼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꼬리 근육, 귀 근육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드물지만 짧은 꼬리를 달고 태어나는 아기도 있다. 맹장이나 털세움근도 진화의 흔적으로 남은 기관이다. 가끔 쭈뼛거리며 소름이 돋는 것도 다 진화의 산물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동물들의 배아는 동일한 모양으로 시작해서 선조의 진화과정과 동일한 발생단계를 거친다. 사람도 배아 초기에는 마치 물고기 같은 형태로 보이다가, 양서류, 파충류 형태를 거쳐 마침내 사람의 형상으로 변형된다. 모든 동물 종이 예외없이 이런 형태를 보이는 것 또한 강력한 진화의 증거다.    

나쁜 설계의 대표적인 예로는 포유류의 되돌이후두신경이 있다. 이 신경은 소리를 내거나 음식을 삼키는 데 쓰이는데, 이상하게도 뇌에서 후두로 곧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내려와서 후두를 지나 심장 근처까지 내려왔다가 되돌아가서 후두와 연결된다. 이는 사람이 아가미를 가진 어류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물려받은 불가피한 유산이다. 

진화의 엔진

5장에서는 진화의 엔진이라는 제목으로 진화를 추동하는 힘이 무엇인지 세밀하게 고찰한다. 그 중 흥미로운 대목은 개의 품종 변화다. 오늘날 개의 품종은 150가지(미국애견협회 기준)에 이르는데, 이 모든 품종이 1만년전 하나의 선조종인 유라시아 회색늑대로 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사육가들은 개의 털 색깔과 두께를 바꾸고, 귀의 길이와 뾰족한 정도를 바꾸고, 골격의 크기와 형태를 바꾸고, 특이한 행동과 성격을 만들어 내는 등 거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주무름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개를 조각했다” 

이렇게 1만년 안에 인위적으로 모든 품종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면, 자연선택에 의한 수억 년에 걸친 진화도 필연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약물 내성도 자연 선택의 적절한 예다. 최근에 거의 박멸된 것으로 보이던 결핵 균주 중에는 현대의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키운 새로운 종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자연선택에 의해 항생제에도 강인하게 살아남는 박테리아가 인간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공격할 때 흔히 써먹는 복잡한 ‘눈’의 진화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다윈이 이미 종의 기원에서 눈의 진화 과정을 단계별 시나리오로 설명한 바 있다. 최근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눈의 진화를 재현한 결과, 눈의 진화에 40만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눈은 최소 40가지 동물집단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밝혀졌다. 

진화의 의미

책 말미에는 인간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화석과 더불어) 우리에게는 비교 해부학, 발생학, 흔적기관, 생물 지리학이 제공하는 인류 진화의 증거들이 있다. 사람 배아가 어류를 닮았다는 것, 사람의 죽은(발현하지 않는) 유전자들, 사람 태아에 일시적으로 털이 덮인다는 것, 사람 몸의 허술한 설계, 모두가 우리의 기원을 증명한다”    

진화론과 관련된 모든 과학적 연구 결과들은 하나같이 진화론을 지지한다. 진화론에 반대되는 결과는 지금껏 단 한차례도 없었다. 이제 진화론은 중력이론만큼이나 명확한 사실이다. 이처럼 명확한 진화론을 아직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한마디로 잘 모르거나 믿고 싶지 않거나 둘 중 한가지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진화론을 제대로 배우거나 접한 적이 없을 뿐이니 잘 알려주면 그만이다. 믿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적인 이유에서다. 그런데 상황이 이 정도라면 이제 진화론을 수용하면서 종교적 가치를 지킬 방안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과학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무지를 정복하는 것은 연구이지, 지레 포기하고 우리의 무지를 창조주의 섭리로 돌리는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초자연적 설명은 언제나 탐구의 끝을 의미한다. <신이 바라셨다>라는 한마디면 이야기는 끝이다. 반면에 과학은 만족을 모른다. 우주에 대한 과학의 탐구는 인류가 멸종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다윈은 또 이렇게 말한다.

“지식보다 무지가 더 큰 확신을 낳는다.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적게 아는 사람이야말로 이런저런 문제가 과학으로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삶의 의미가 퇴색된다며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조언한다. 

“진화는 생명이 다양해진 과정과 패턴을 설명하는 이론이지, 삶의 의미를 말해 주는 거창한 철학적 체계가 아니다” 

“과학에서 영성을 끌어낸다는 것은 우주 앞에서 겸손을 느낀다는 것이고, 우리가 모든 답을 다 알 순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중략)비교적 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연의 경이에서 끝없는 위안과 양식을 얻어 낼 줄 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해야 마땅한 진화론, 스스로의 기원을 밝혀낸 최초의 종으로써 이 놀라운 드라마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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