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달리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루키의 소설도 좋아하지만, 나는 그의 에세이가 더 좋다.

내 또래 대부분의 하루키 입문자들처럼, 나역시 대학시절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로 그의 글을 영접했다. 그리고 그의 신간이 나올 때 마다 무의식적으로 당연한 의식을 치르듯이 소중히 읽곤 했다.

하지만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기억에 잘 남아 있다. 아무래도 내가 그의 인생관, 세계관을 소설이라는 미묘한 형태로 풀어낸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거 같다. 차라리 명확한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에세이 형식을 선호하게된 이유라고 본다. 평소에 소설보다 논픽션을 더 좋아하는 내 개인 취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얼마전 읽은 하루키의 달리기 이야기도 정말 감동하며 읽었다.

그의 소설가로서의 삶이 달리기라는 형태로 표현된 이야기다.

하루키, 달리기로 말하다

참고 끝까지 달리고 나면, 몸의 중심에서 모든 걸 깡그리 쥐어짜내 버린 것 같은, 어쩌면 모든 걸 다 털어내 버린 듯한 상쾌함이 거기에 우러난다.

하루키는 달리는 행위를 통해 인내하는 법,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붓는 법을 익히며 거기서 오는 쾌감을 진심으로 즐긴다. 나로서는 참 따라하기 힘든 삶의 방식이지만 ‘나도 한번쯤은’ 하며 은근한 기대를 가져보기도 한다.

어떤 일이 됐든 다른 사람을 상대로 이기든 지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에 더 관심이 쏠린다.

자신이 쓴 작품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는가 못했는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그것은 변명으로 간단하게 통하는 일이 아니다.


하루키, 자신의 기준에 따라 산다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 따라 산다는 그의 자신감이 부럽다. 나는 과연 내 스스로의 기준을 얼마나 따르고 있는 것인가.

운동회 같은 것은 진저리 치게 싫었다. 그것은 위로부터 “자, 해라” 하고 강요된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을 때 강요받는 일을 예전부터 참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신이 하고 싶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다면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했다.

자신이 흥미를 지닌 분야의 일을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추구해가면 지식이나 기술을 지극히 효율적으로 몸에 익힐 수 있다.


하루키, 자신의 인생을 산다

깨달은 자들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필요와 의미를 위해 움직인다. 그래서 항상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친다.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 놓지 않으며,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나는 평소 하루에 3시간이나 4시간 아침나절에 집중해서 일을 한다. 책상에 앉아서 내가 쓰고 있는 일에만 의식을 집중한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생각하지도, 보지도 않는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된다.

비록 아무것도 쓸 것이 없다고 해도 나는 하루에 몇 시간인가는 반드시 책상 앞에 앉아서 혼자 의식을 집중하곤 한다 – 레이먼드 챈들러

이것은 근육의 훈련 과정과 비슷하다.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어올려 간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 그 수치를 살짝 올려간다.

얼마전 읽은 그릿Grit 에서 얘기한 ‘의식적인 집중’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조금씩 한계치를 끌어 올리는 것이 의식적인 집중의 핵심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달리기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많지만, 달리기 그 자체보다는 거기서 파생되는 하루키의 메시지가 더 인상적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라는 말을 ‘달리기’라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며 삶의 자세를 매일 가다듬는 하루키의 삶이 참 멋지다. 스스로 의지를 다잡고 건강도 챙기는 일석이조의 습관을 나도 언젠가는 완성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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