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종교나 이념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과 명백하게 반대되는 사실을 알게 되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 믿음과 반대되는 내용을 받아들이면 스스로 틀렸다고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죠. 평생 믿어온 신앙이나 신념이 무너지는 걸 참을 수 없는 겁니다.
이런 일은 일상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습니다. 진보 성향인 사람들은 보수 매체의 보도를 잘 믿지 않고, 반대로 보수 성향인 사람들은 진보 매체의 보도를 믿지 않습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것이죠.
지구평면설이나 각종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도 비슷합니다. 반대되는 증거는 무시하고, 애매한 사실들을 교묘하게 포장해서 자기 믿음을 강화합니다.
사람들은 온라인 쇼핑할 때 살 제품의 리뷰를 봅니다. 그런데 재밌는건 결제를 끝내고 나서도 이미 산 제품의 리뷰를 상당히 많이 본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것이죠.
이런 인간의 성향,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성향을 ‘확증 편향’ 이라고 합니다.
한 때 ‘아침형 인간’에 대한 책이 인기 있었습니다. 저자는 성공한 아침형 인간의 예시를 무수히 늘어 놓으며 아침형 인간이 되라고 독자를 설득합니다. 하지만 아침형 인간이면서 실패한 사람, 아침형 인간이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쓰지 않습니다. 명백한 확증편향이죠.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이렇게 확증편향에 기대서 책을 씁니다.
요즘은 SNS를 통해서 확증 편향이 더 강력하게 우리 사고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특정 이슈의 어떤 의견에 ‘좋아요’를 누르면 그 의견과 비슷한 내용이 피드에 더 자주 등장합니다.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는 영상을 보면 역시 비슷한 내용이 추천 영상에 자주 뜨게 되죠. 점점 하나의 의견을 강화하고 특정 정치적 성향이 자신도 모르게 더 강해집니다. 그 의견과 반대 입장이나 경쟁하는 정치인의 생각은 무시되고 알 수 없게 되어버리죠.
그렇게 우리의 성향이나 견해가 한 쪽 방향으로 굳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 전세계적으로 정치적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이죠.
특히 종교, 이념, 철학 같은 분야는 애초에 모호한 측면이 있어서 확증편향이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신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해도 신을 믿습니다. 신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신의 어떤 특징으로 믿습니다. 같은 신앙을 가진 신도들끼리 모여 집회, 예배, 경전 공부를 하면서 믿음을 점점 강화합니다.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쉽게 빠지는 이유도 이런 확증편향 때문입니다. 확증편향이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 것이죠.
주식 투자할 때도 확증편향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특정 종목을 열심히 분석하다가 맘에 들면 투자를 합니다. 그런데 자기 돈이 들어간 순간 회사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확증편향에 빠집니다. 예를 들어 신규사업 투자를 위해 유상증자를 한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외부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면 분명 위험한 투자인데, 반대로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좋은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투자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글을 찾아 읽고 ‘좋아요’를 누릅니다. 반대되는 글에는 ‘싫어요’를 누르겠죠.
긍정적인 뉴스만 맞다고 생각하고 부정적인 내용은 무시합니다. 확증 편향에 빠진 것이죠. 그러다가 해당 종목이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면 그때서야 정신을 차립니다. ‘종목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투자에서 확증편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일깨워주는 말이죠.
워런 버핏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기존의 견해들이 온전하게 유지되도록 새로운 정보를 걸러내는 일이다
– 워런 버핏
이렇게 확증편향은 단순한 심리현상이 아니라 우리 삶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무서운건 확증편향에 빠지고 있어도 이런 변화를 본인 스스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죠.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입니다. 나는 20년의 수형 생활 동안 많은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그 만남에서 깨달은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의 결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단히 완고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설득하거나 주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담론 | 신영복
신영복 선생의 말처럼 확증편향은 웬만해선 바꾸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본성에 가까운 것이죠.
이렇게 우리 삶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확증편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롤프 도벨리는 자신의 책 ‘스마트한 생각들’에서 이렇게 조언합니다.
자신의 이론이 옳다고 확신할수록 그와 모순되는 것들을 더욱더 활발하게 찾아 나서라
그리고 찰스 다윈의 예를 들려줍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확증 편향에 체계적으로 맞서 싸우는 것을 습관화했다. 그는 관찰 결과들이 자신의 이론과 어긋날 때면 언제나 그 점을 가장 진지하게 고민했다
자신이 굳게 믿고 있는 것과 반대되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오히려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저도 예전에 교회를 다닐 때 진화론은 말도 안되는 이론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좁은 관점을 벗어나서 진화론을 진지하게 공부해 보니까 오히려 진화론이 합리적으로 보이고 지금은 오히려 너무나 아름다운 과학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결론내렸습니다. 누구나 ‘내가 갖고 있는 신념이나 지식이 항상 옳다’는 생각을 접어야 한다고 말이죠. 반대로 ‘내 생각은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합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실’ 같은 것은 없습니다. 종교, 철학, 이념, 정치, 경제 모두 마찬가지죠.
확증편향은 인간의 본성처럼 강합니다. 그래서 역으로 이 확증편향을 극복하고 자기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죠
철학자 대니얼 클라인의 말을 되새기며 우리 모두 확증편향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믿음은 네 믿음보다 우월하지 않다”
– 대니얼 클라인 ‘사는데 정답이 어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