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해져 가는 당신의 존재감을 다시 빛나게 해줄 5가지 방법

오늘은 존재감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해요.

여러분 자기 존재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 제가 말하는 존재감은 어떤 모임이나 조직, 혹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고 소위 인싸가 되는 그런 존재감이 아니에요..

자기 스스로, 자기 내면에서 느껴지는 존재감. 내 자아를 충분히 드러내고 표현하면서 살고 있다, 라는 진짜 존재감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도 좀 어렵죠.

더 쉽게 한번 예를 들어 보면, 남들 앞에 나서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 굉장히 조용하고 과묵한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실력이 있어서 회사의 팀장이 됐습니다. 그래서 남들 앞에 항상 나서고 지휘하고 주도를 해야 되는 입장이 됐어요. 자긴 하기 싫은데 회사에서 시키니까 해야되죠. 회사에서 월급도 올려주고, 가족들도 좋아해요. 사회적 압력 때문에 싫어도 해야되죠. 결국 자기 존재를 갉아 먹으면서 하게 되는 겁니다.

또 하나 예를 들면, 아주 흔히 접하는 상황이에요.

미술 전공하고 싶은 고등학생이 있어요. 그런데 엄마가 의대를 가래. 결국 열심히 해서 의대를 갔습니다. 하지만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죠. 굉장히 흔한 스토리입니다.

그래서 오늘 얘기하는 존재감은 외부의 환경이나 만나는 사람들에 따라 가면을 쓰지 않고, 자신의 본 모습을 꾸밈없이 내보이는 진짜 존재감을 말합니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고 잘 나가는 듯 보이는 사람도 스스로의 존재감에는 자신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멀쩡해 보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희미해져 가는 자기 존재의 의미를 심각하게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심지어 이런 고민조차 없이 그저 주어진 삶을 마지 못해 받아들이며 좀비같은 삶을 꾸역꾸역 이어갑니다.

왜 우리는 진정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괴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요?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에리히 프롬은 자기 평생의 사상을 집대성한 책 <소유냐 존재냐>를 통해 이 문제에 답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람들이 자기 내면이 아닌 자기가 가진 것, 즉 소유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봤습니다. 

즉 존재가 아닌 소유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프롬은 이것을 존재 양식, 소유 양식이라고 표현합니다.

역시 개념이 조금 어렵죠.

예를 한번 들어 보죠. 

공부를 예로 들면 존재 양식의 목표는 보다 깊이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유 양식의 목표는 보다 많이 아는 것입니다.

독서도 비슷합니다. 존재양식의 독서는 책을 읽고 깨닫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유양식의 독서는 그저 많이 읽는 것입니다.

리더십도 마찬가집니다. 존재 양식의 리더십은 그 사람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옵니다. 리더 스스로 앞장서고 팔로워들은 기꺼이 그를 따릅니다.

소유 양식의 리더십은 리더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지만 단지 리더의 지위를 소유한 것과 같습니다. 부하들이 마음으로 따르지 않죠. 소유 양식의 리더는 어쩔 수 없이 억압하고 윽박지르게 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소유가 아닌 존재를 택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프롬이 말하는 존재 양식으로 살기 위한 다섯 가지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능동성을 가져야 합니다.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권위에 복종하기만 해서는 능동적이라고 할 수 없죠. 

이 능동성은 단순히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내면의 만족을 충분히 느끼며 실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주 단순한 예를 들면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지 말고, 스스로 찾아서 하면 능동적이 될 수 있겠죠.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하더라도 내 가치를 더해서 더 좋은 결과를 내겠다고 마음먹는 겁니다. 시키는 일만 꾸역꾸역 하는 거 보단 훨씬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공부도 마찬가집니다. 학교나 부모가 시키는 공부만 해서는 능동적일 수 없죠. 자기 스스로 공부의 방향과 목표를 정하고 해야 능동적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능동적이라는 말은 자기 본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어떤 권위에도 억압되지 않고 자유롭고 활동적인 상태를 능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소비가 아닌 생산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생산은 공장의 생산이 아닌 창의적인 생산을 말합니다. 

달리 말하면 크리에이티브, 즉 창조성이죠. 

소비하고 소유하기만 하는 삶은 빈곤합니다.

뭔가 자신의 창의성과 능력으로 만들어 내려고 해보세요. 

요즘 같으면 블로그나 유튜브에 자기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것도 좋은 활동입니다.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 수도 있죠. 꼭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도 됩니다.  

자기 고유의 능력을 창의적이고 생산적으로 활용할 때 우리는 더 온전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셋째, 소유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유를 포기하고 맨몸으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 소유물이 내 정체성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런데 마치 아이를 소유물처럼 대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자기 욕망을 아이에게 투사해서 자신이 어릴 때 하지 못한 공부를 대신하도록 하는 경우죠. 아이의 적성과 상관없이 말이죠. 이 때 부모는 아이를 자신의 욕망을 투사할 도구로 소유한 것과 마찬가집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보면. 사랑하는 남녀가 있어요. 그런데 이 남자는 여자에게 너무 집착합니다. 자기랑 떨어져 있어도 하루 24시간 모든 동선을 알고 있어야 되요. 어디냐고 물었는데 잠깐 메시지가 늦으면 다른 일을 못할 정도가 됩니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이 여자를 소유하려는 거죠. 이 남자는 스스로 인식을 못하지만 여자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소유의 대상으로 여기는 겁니다.

돈도 마찬가집니다. 돈이 많든 적든 내 본질적인 정체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로또 1등을 맞아서 돈이 많아졌다고 내 본질이 바뀌나요? 사업에 실패해서 돈 좀 잃었다고 내 자아가 바뀌지 않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형태의 소유를 기꺼이 포기할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나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그 어떤 사물도 나의 삶에 의미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넷째, 협력해야 합니다. 

혼자 잘 하고 앞서 나가려는 사람은 내 주위 사람들을 모두 경쟁의 대상으로 봅니다. 자기보다 힘이 약하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은 착취하려고 합니다. 자기 존재감을 갉아 먹는 행동이죠. 

협력할 줄 아는 사람은 내 주위의 모든 것을 경쟁이나 착취의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더불어 살며 협력할 존재로 봅니다. 

다섯째. 베풀어야 합니다.

소유 양식을 따르는 사람들은 혼자 독점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존재 양식을 따르는 사람은 나누고 베풉니다. 

나누고 베품으로써 개인이라는 자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협력하고 베푸는 사람들은 자기 생명력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가 자아의 좁은 틀을 벗어날 수 있는 겁니다.

요약해 봅니다.

우리의 희미한 존재감을 다시 빛나게 하기 위해 다섯 가지 조치가 필요합니다. 

첫째, 능동성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소비가 아닌 생산을 해야 합니다.

셋째, 소유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협력해야 합니다. 

다섯째. 베풀어야 합니다.

능동적으로

창조하며

소유하려 하지 말고

협력하며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우리의 존재를 의미있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선택 하시겠습니까?

소유하는 삶인가요? 아니면 존재하는 삶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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